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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권력” “대통령의 비선실세” “브이 제로”(V0).
최근 국회 국정감사 출석 문제를 두고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 김현지 대통령실 1부속실장에 대한 야당의 묘사다. 김 실장에 대해선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면서부터 여의도 정치권에 ‘카더라’식 인물평이 떠돌았다. 특히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손발이 묶이면서, 김 실장은 정권 실세로 부각되며 더욱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절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비밀스러운 행보 탓에, 그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은 커지고 풍문 상병급여 은 되레 부풀려지고 있다.
철벽 방어와 비밀주의…구내식당 ‘혼밥러’ 김현지
2022년 이 대통령이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당시 의원실 보좌관을 맡게 된 김 실장에 대한 궁금함으로 의원회관 818호 이재명 의원실 문을 두드린 일이 있다. 의원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뚫고 김현지 보좌관에게 다가 장기전세보증금 가 ‘영업용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명함을 건넸다. 그는 급히 자리를 정리한 뒤 명함만 받아들고 머쓱할 만치 차갑게 말했다. “여긴 그냥 실무하는 곳이에요. 본청에 있는 김남준 부실장과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현재는 대통령실 대변인이 된 김남준 당시 당대표실 부실장은 성남시 대변인을 지냈을 뿐 아니라, 이후 늘 이 대통령의 공보 역할을 강남직장인밴드 도맡아왔다. 기자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그와 이야기하면 될 일이지, 굳이 본인까지 찾아왔냐는 말로 들렸다. ‘앞으로는 오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멋쩍은 첫 만남 이후 김 실장과 다시 조우할 기회는 없었다. 그는 기자들과 밥 먹고 차 마시며 의원실을 적극적으로 세일즈하는 전통적인 보좌관들과는 많이 달랐다. 의원회관에서 다른 방의 보좌진들 우리은행 적격대출 과 어울린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매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때가 되면 구내식당에서 언제나 목격되는 ‘일벌레’라고 당시 국회 보좌진들은 입을 모았다.
김 실장을 아는 이들은 “사심이 없다”는 말로 그를 추어올리곤 했다. “김현지는 원래 남들이 일 벌리면 수습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검찰이 김현지를 얼마나 털었겠나. 그런데도 뭐 하나 가실게요 의심스러운 구석조차 나온 게 없으니 여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것 아니냐.” 친이재명계 한 인사는 이렇게 짚었다.
‘지독하게 깐깐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그가 처음 맡은 보직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었다. 대통령실 살림을 맡아 대통령실 사람들의 씀씀이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대통령실 한 근무자는 “대외 업무 때 쓴 영수증을 처리했는데 ‘일반음식점’인데도 술을 파는 곳이라고 홍보가 돼있는 걸 김 비서관이 확인해 결국 영수증 증빙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자비로 벌충한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깐깐한 일벌레는 어떻게 문고리가 되었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직원식당에서 김현지 1부속실장(당시 총무비서관) 등 직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 맞은 편에 김 실장이 앉아 있다. 이 대통령 페이스북


김 실장이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특히 지난해 총선 무렵이다. 민주당 안팎에서 ‘민주당 공천은 당대표실과 여러 당직자들의 사무실이 있는 국회 본청이 아니라, 김현지 보좌관이 있는 의원회관에서 비밀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풍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소문의 진위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실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풍문이 재연되고 있다. 총무비서관으로서 대통령실 내부 인사 권한은 있으나, 고위공직자 인사 권한은 없는 김 실장이 광범위하게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후문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과정에서 당시 총무비서관이던 김 실장이 ‘사퇴해야 할 것 같다’는 뜻을 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같은 의혹은 점점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김 실장이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성남참여연대에서 활동한 그는 이 대통령이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오랜 인연 덕분에 흉금없는 소통이 가능한 ‘동지적 관계’에 가깝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성남 라인’을 잘 아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직언할 사람은 김현지밖에 없다. 김현지는 이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고, 문제 의식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이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몇 있는데 김현지가 그 중 하나다. 김현지는 할 말을 한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종종 ‘돌출 발언’을 페이스북에 올려 참모들을 난처하게 할 때도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김 실장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대표를 맡은 2022년부터 이 대통령은 쉼 없이 사선을 넘어왔다. ‘이너서클’의 신뢰가 끈끈해질 수밖에 없는 서사다. 그러다보니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의 대표 시절부터 곳곳에서 터지는 현안들을 수습하고 주변 인사들을 단속하는 역할을 부지불식간에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 친명계 의원은 김 실장의 역할을 “양치기 개”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김 실장이 움직이지 않아도 의원들이 스스로 당시 대표였던 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내용에 대해 김 실장의 의견을 물어오면서 그의 영향력도 확대돼 왔다.
그를 잘 아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김현지 실장은 그렇게 악마화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하지만, 대통령실과 김 실장이 택한 비밀주의가 되레 그에 대한 상상을 부풀려놓는 면이 있다. “배후에서 일하고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는 게 정진상 전 실장이나 김현지 실장을 아는 이들의 평가다. 그러나 1급 고위공무원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최전선에서 보좌하는 이가 ‘익숙한 방식’, 자신들에게 ‘편한 방식’으로만 일할 수 있을까.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국회 국정감사 출석은 임명직 공직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길이기도 하다. “국민주권은 직접 선출된 권력에 의해 첫째로 발현된다. 임명된 권력은 선출 권력을 존중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항상 강조해온 이 메시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공직자는 김현지 실장일 것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