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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으로 가득한 운길산역에 도착한다. 산꾼들 사이에 다산능선이라 불리는 운길~적갑~예봉산을 종주하기 위해서다. 운길산역에서 나와 오른쪽 등산로 표지판을 따라 산 들머리에 들어선다. 아침 이른 시간, 쌀쌀한 산골 기온에 옷깃을 여민다. 운길산의 이름은 구름이 흘러가다 산에 걸려서 멈춘다고 하여 붙여졌다. 이름답게 멀리 산 정상은 쉬어가는 구름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 기를 귀울인다. 또륵 또르륵 희미하게 들리는 목탁 소리에 이끌려 방향을 돌린다. 초파일이 다가오는 수종사에 들러 보려는 생각에서다. 각종 연등으로 장식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릴 적 운동회 날 만국기가 일본 인터넷 떠오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문을 거쳐 불이문, 해탈문을 지나 수종사 경내에 다다른다.
해동 제일의 경관을 자랑한다는 이곳은 조선 전기인 1458년(세조 4년)에 당시 왕이었던 세조의 명으로 건립되었다. 당시 세조가 금강산 유람하던 도중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바위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 대학학자금대출이자 나와 확인해 보니 근처에 18 나한상이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절을 짓게 했다는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약사여래불 옆 약수터에서 돌두꺼비 입으로 토해내는 감로수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정상으로 향한다. 1km 정도 오르니 데크로 된 넓은 전망대가 나온다. 흘러가던 구름도 멈춰서 쉬어간다는데 이 산객도 잠시 쉬었다 가야 운길산에 대한 예의가 신용회복자 아니겠는가? 내려다보이는 두물머리의 절경에 잠시 넋을 잃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낸다.
예봉산으로 가기 위해 반대쪽 길로 내려간다. 경사가 급하고 자갈이 많아 험한 길이다. 세재고개로 향하는 중에는 간간이 분홍색으로 화장을 한 철쭉이 있어 산행의 묘미를 더해 준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단풍 애잎은 조그만 바람에도 까르르 웃으며 연신 손 핸드폰 연체 을 흔들어 댄다. 악수하듯 살짝 잡아보니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어린아이의 손처럼 부드럽다.
세재고개에서 간단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적갑산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비교적 평탄한 편이라 식사 후 걷기에 부담이 적다. 적갑산을 지나 한참을 가다 보니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이어서 철쭉군락지가 나오는데 철쭉나무 밑동이 어른 팔 주택사업자 뚝만큼 굵어 수령이 궁금해진다. 봄꽃을 대표하는 철쭉은 한자로 '척촉躑躅'으로 길을 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철쭉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지나가는 나그네가 자꾸 걸음을 멈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한다.



수종사 연등장식과 필자.


지형 탓인지 갑자기 바람이 심술궂게 불어댄다. 쓰고 있던 모자를 날리는 장난을 친다. 조그맣게 보이던 축구공 모양의 강우 레이더관측소 전망대가 제법 커진 걸 보니 예봉산 정상이 멀지 않은 듯하다. 바람과 장난을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눈앞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보인다. 새처럼 날아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자연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철문봉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내용을 읽어 보니 조안면 마재마을의 정약전이 두 동생 약종, 약용과 함께 본가인 여유당에서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200여 년 전 삼 형제는 발아래 있는 남한강과 북한강을 보며 호연지기를 키우고, 저 멀리 보이는 삼각산 아래 한양도성을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품었을 것이다.
예봉산 정상에 도착해 두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내려놓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이름다운 풍광을 즐긴다. 강 건너 검단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저 멀리 백운봉과 용문산이 뚜렷하게 보이는 게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양평의 마테호른이라 불릴 만하다. 반대편에는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판 한양도성인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팔당역으로 하산하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멋진 팔당호를 바라보며 내려가는 능선길과 비교적 걷기 쉬운 조용한 길이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왼쪽 골짜기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보랏빛 예쁜 각시붓꽃 무더기가 심심치 않게 보이면서 산행의 피로를 씻어 준다. 산란기에 접어든 각종 산새들의 한껏 높아진 사랑 노래는 여섯 시간을 걸어온 노곤함을 달래 주는 응원가가 되어 5월의 푸르른 숲속에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