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0일 미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아흐마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시리아 대통령 공보실 제공)


2001년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WTC)를 무너뜨려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 출신 인물이 1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을 손님으로 방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청해서다. 아흐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역사적 첫 회담
알샤라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 서 트럼프 대통령과 2시간가량 회담했다. 시리아 국가 원수가 백악관을 찾은 것은 1946년 시리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해 공화국을 세운 뒤 처음이었다.
시리아는 50년 넘게 아사드 가문이 독재한 나라다. 수십 년간 국제 제재 속에 고립된 상태였다. 알샤라 대통령 역시 얼마 전까지 미국과 유엔의 테러 제재 대상 명단에 올라 있었다. 작년까지 미국 정부가 그에게 건 현상금이 1,000만 달러(약 150억 원)였다. 알카에다 소속으로 수년간 이라크의 미군 교도소에 수감된 적도 있다. 그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터졌을 때 창설한 ‘누스라 전선’ 역시 알카에다 연계 조직이었다.
2016년 알카에다와 결별한 그는 시리아 북부 4개 반군 조직을 통합해 이슬람 무장 단체 ‘하야트 타흐 리르 알샴(HTS)’을 결성했고, HTS는 작년 말 시리아를 장기간 철권통치로 다스린 알아사드 정권의 축출을 주도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곧장 그에게 걸었던 현상금을 내렸고, 올 7월에는 HTS에 대한 테러 지정도 철회했다.

이해관계의 일치
반군 지도자였던 알샤라 대통령은 이제 정치인이다. 그의 조국 은 오랜 내전과 제재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다. 세계은행은 시리아 재건 비용을 최소 2,160억 달러(약 317조 원)로 추산했다. 알샤라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시저 시리아 민간인 보호법(시저법)’에 따른 제재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알아사드 정권의 민간인 학살·고문을 처벌할 목적으로 발효된 시저법은 시리아 정부·군대·금융 기관과 거래한 제3국 기업·개인에 미국이 2차 제재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제재 해제에는 입법이 필요하다. 미국 의회에는 신중론이 없지 않다. 아직 새 시리아 정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은 6개월마다 조건을 재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향적이다. 이미 5월에 제재를 면제했고 이날 면제 조치를 180일 연장했다.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정면) 미국 대통령이 10일 미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아흐마드 알샤라(뒷모습) 시리아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시리아 대통령 공보실 제공)


적극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이날 회담에서 시리아와 이스라엘 간 안보 협정 체결 방안이 논의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뒤 취재진에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 모두와 잘 지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중동 구상의 핵심인 ‘아브라함 협정’ 확대의 일환일 공산이 크다. 집권 1기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아랍국 간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 왔다. 그 결실이 아브라함 협정이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 4개국이 1기 때 가입했고, 최근 중앙아시아 국가인 카자흐스탄이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수교를 협정의 정점으로 보고 있다. 협정이 커질수록 반미 국가인 시아파 맹주 이란은 고립된다.

함께 IS 소탕전
미국의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 소탕전에 동참하기로 한 것은 시리아가 친서방 노선으로 전환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함자 알무스타파 시리아 정보장관은 이날 미국과 시리아 간 백악관 정상회담 직후 엑스(X)에 “시리아가 최근 ‘IS 격퇴를 위한 국제연합’과의 정치적 협력을 위한 선언문에 서명했다”고 썼다.
다만 이날 알샤라 대통령의 백악관 방문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다른 외국 정상 방문 때와 달리 환영 행사나 언론 공개가 없었다. 미국인이 대거 희생된 테러와 무관하지 않은 인물을 환대했다는 불만 여론이 의식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해석이 나온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