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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 있었다. 물린 과정을 시대에 감지됐는지 시원스러운최병소의 '무제'. 우손갤러리 제공


순백의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이 검은 광물처럼 반짝인다. 작가는 평생 신문지를 펜과 연필로 그어 채웠다. 활자가 온데간데없는 신문지는 더 이상 신문이 아니다. 바스라지기 직전의 검은 캔버스에는 하나같이 '무제'라는 이름이 달려 있다.
서울 성북동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최병소(82) 화백의 개인전 '최병소의 무제'에는 이름 없는 까만 작품이 즐비하다. 팔순을 넘긴 작가가 평생 모나미 볼펜 한 자루로 무수히 많은 선을 그어 완성한 작품이다. 높이 6m의 대형 설치 작품을 포함해 오브제, 콜라주 등 최근까지 제작한 작품 30점이 나왔다.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종이 신문 위에 소분방법 '모나미153' 볼펜으로 사선을 그어 지면을 채운다. 종이가 검게 채워지면 다 쓴 볼펜으로 긁어내기도 하고, 연필로 덧칠도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검은 회화는 광물의 표면을 연상케하는 독특한 질감으로 남는다. 신문에 담긴 글씨는 '지우'고 그 결과로 검은 잉크가 '채워'지는 과정의 무한 반복이다. 엇비슷해 보이는 '무제' 작품에는 그렇게 저마다의 시간과 이야 신한 자동차대출 기가 응축돼 있다.
얇은 신문지를 뾰족한 펜 끝으로 겹겹이 덧칠하면 찢어질 법도 하지만 먹지가 된 작품은 나무 껍질처럼 견고한 형태를 유지한다. 이은주 큐레이터는 "작업의 지지체인 종이가 닳고 찢겨서 물성을 잃고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르면 검은 표면으로 승화된다"며 "원시의 에너지가 집적된 광물같기도, 타고 남은 재같기도, 밀물과 썰물이 론대출 요동치는 파도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단색화와 실험 미술의 결합



최병소 작가의 작업실 풍경. 전시에는 작가의 작업 과정이 영상으로 공개됐다. 우손갤러리 제공


최 작가는 실험미 집합명사단어 술의 산실인 대구 출신이다. 그는 국내 최초 현대미술제인 '대구 현대미술제'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작품이 단색화로 분류되면서 명성을 얻고 세계 국공립 미술관이 앞다퉈 소장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작가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실험적인 시도로써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했다. 종이 신문과 모나미153 볼펜만으로 만든 6m 설치작품은 평범함의 위대함을 상기시키고, 프리랜서마이너스통장 미국 유명 잡지인 '타임'과 '라이프'의 로고만 남긴 채 완성한 까만 작품에선 무한 반복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시간과 인생의 속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지를 비우고 채우는 일은 작가에게 작업일까, 수행일까. 거동이 불편한 최 작가를 대신해 전시장에 나온 딸 최윤정씨는 "아버지는 항상 무엇을 만들고, 표현하기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고 하신다"며 "작업을 처음 시작한 1970년대에는 암울한 뉴스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활자 지우기를 한 적도 있으셨겠지만 지금은 생각과 감정을 지우고 평온함을 찾으시려는 것 같다"고 했다. 전시는 다음 달 21일까지.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