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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강보한
등록일: 26-01-2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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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과 게 사람과 그래도 씨망향정 가는 길 전망대에서 본 산수절경 화룡점정_보산적벽 위의 망향정, 장항적벽 위의 옹성산… 이 모든 것을 아우른 적벽동천이 물 속에 잠겨있다.
[<사람과 산> 박기성 전문기자] 1972년 3월, 화순 대곡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11점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으면 확인된지 넉 달만에 전격 국보가 되었다. "청동기들의 제작 수준이 높고 종류도 다양하며 수량 또한 많은 데다 종교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청동방울과 거울, 정치적 권위를 드러내는 청동검이 동시에 발견되었기 때문"으로 무덤의 주인이 신분이 높은 지배층이면서 제사장이라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모델 케이스여서 그랬던 듯하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는 BP2560+120년으로 나왔는데 출토 유물의 종류로 판단하면 기원전 3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보여진단다(〈나무위키〉).
청동검은 세형동검(細形銅劍)이었다. 요서, 요동은 물론 한반도와 일본에서도 나오는 비파형동검과 달리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백경릴게임 일대의 연해주에서만 보이는 이 칼을 나는 오랫동안 진국(辰國)의 표지유물로 여겼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삼한으로 분화되기 전 한반도에 있었다는 나라 진국은 연나라에 밀려 요동에서 쫓겨난 옛 조선인들이 평양에서 세형동검문화를 일구고 남쪽과 동북쪽으로 퍼뜨렸다 싶어서였다. 연나라가 요동군을 점령한 것은 기원전 3세기라는 게 정설이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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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선 유물이 있는 광주박물관부터 찾았다. 유리 케이스 안에 든 칼은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길이 30cm 전후의 저걸로 삼한을 지배했단 말이지? 청동거울이나 팔주령(八珠鈴)의 용도는 알겠는데 폭 4.3cm에 길이 7.6cm의 청동도끼로는 도대체 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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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분포도_적갈색으로 표시된 비파형동검은 요서, 요동, 한반도와 혼슈 서쪽 끝, 규슈 북단에서 출토된 반면 갈색의 세형동검은 한반도와 혼슈 중부, 블 라디보스톡 근처의 연해주까지 퍼져있다. 이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데가 동남쪽 진방 (辰方)의 땅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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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화순 대곡리 출토 세형동검들_확인된지 넉 달만에 전격 국보 가 되었다. 같이 발견된 청동방울과 다뉴세문경도 국보인데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 과는 BP2560+120년이라고 한다.
유물이 나왔다는 데는 지석천(砥石川)이라고도 하는 드들강 가 개화평야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었다. 내대곡(內大谷), 외대곡, 중대곡으로 나뉘어있을 만큼 큰 마을 가운데 동산으로 원래 대곡면의 중심이었는데 1914년 드들강 북쪽의 오도면과 통합, 도곡면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위세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황금물결을 이루어 가는 널따란 들판을 굽어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뒷산 비봉산성으로 올라가본다. 195.5m 높이의 산에 쌓은 둘레 925m의 테뫼식 산성이니 청동기시대치고는 높은 데 있고 규모가 크다. 그만큼 땅이든 재물이든 쟁탈전이 치열한 데였다는 반증이리라. 인간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게 되는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남의 잉여물을 뺏으려 혈안이 되는 자들이 생겨났고 뺏기면 일 년 농사 헛지은 셈이 되는 자들은 안 뺏기려고 발버둥을 쳤다. 성은 이런 이유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우리 올라가는 산길에는 아람이 발에 채이고 있는데.
능주목 관아 정문인 죽수절제아문_선조 이전에 세워진 주심포식 건물이다. 능주목은 관할 구역이 7면, 딱 군 정도되는 형세였다.
성을 내려오면서 보니 비봉산이 '목사고을 능주'의 진산이다. 목사고을이라고 해서 읍세(邑勢)가 얼마나 짱짱했을까 싶어 찾아보니 능주면, 도곡면, 도암면, 춘양면, 청풍면, 이양면, 한천면의 7면이다.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 구씨의 관향(貫鄕)이어서 능성현이던 것을 일약 능주목으로 올렸다는데 형편은 군 정도밖에 안 된다.
유일한 조선시대 건물이라는 죽수절제아문(竹樹節制衙門)을 보자 약간 촌스런 느낌이 든다. 목사고을 관아 정문이라면서 누문(樓門)이 아니라 단층집, 게다가 건물 몸푸에 비해 지붕이 약간 작다. 그래 고개를 갸웃했는데 돌아서며 생각하니 소박한 맛이 좋다.
근래 복원한 장대한 누각 봉서루(鳳棲樓)에 올라가본다. 뒷산이 비봉산이니 당연히 여기에 봉황이 살아야 하리라. 능주 출신의 명유(名儒) 양팽손의 시가 눈길을 끈다. 백아산 아래가 고향인 광주 한솔내과의원 양승호 원장을 만났을 때 "우리 14대조 소쇄원 양산보 님은 조광조의 제자였고 학포 양팽손 님은 친구였다"는 말이 떠올라서다.
'조광조선생 적려(謫廬) 유허지'는 산 밑에 있다. 귀양살이를 했던 초가집을 다시 만들어 놓았는데 안을 보니 여기를 찾아왔던 양팽 손이 조광조와 마주 앉아있다. 둘은 1510년 생원시의 장원과 아 원(亞元)으로서 성균관 동학(同學)이었고 1515년 알성시와 이듬해 식 년시에 나란히 급제했으니 거의 동기뻘이었으며 1519년 기묘사 화가 일어나 조광조가 유배되자 양팽손이 소두(疏頭)로서 항소했 다. 이 집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을 때는 시신을 거두었으며 관작 이 삭탈되자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49년 뒤 조광조는 복권이 되어 보국대광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42년 뒤에는 문묘(文廟)에 종사(宗祀), 성인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동방 18현은 또 거의 다 그의 문인이거나 문하생, 아니면 손제자(孫弟子)들이었는바 그는 이념으로 조선 유교를 제패한 것이었다. 유학을 경전 해석에 그치는 훈고학(訓詁學)이 아 니라 우주의 원리에 대한 해석철학이면서 실천윤리로 띄워올려 이후 조선의 선비들은 이론과 실천이 다름이 아니게 여겼는바 의병과 독립운동의 뿌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리라.
대곡리 서쪽 효산리에 고인돌 무덤떼가 있다해 찾아가본다. 동남 쪽으로 뻗은 골짜기 양쪽에 277기, 보검재 넘어 춘양면 대신리에 319기 등 596기가 몰려있다. 이들은 2000년에 고창, 강화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하지만 하루에 다섯 번 있는 셔틀버스 운행이 끝났다 해 하릴없이 운주사로 향한다. 대초천과 정천을 거슬러 남쪽으로 가는 817번 지방도를 따르다 용강리에서 우회전하니 보인다.
바야흐로 어스름이 깔리는 야산 골짜기의 석탑과 석불들이 아프리카 미술품 같다. 길쭉한 키다리 목각상이나 희화적(戱畵的)인 가면들처럼 황금비율 이런 거 다 팽개치고 저마다의 미감 따라 손 가는 대로 만들어본 품새다. 언덕 위 한 쌍의 와불(臥佛)에 이르니 밤이 되었다. 밤이 되면 부처도 잠을 자야하는가? 건너편 야산 중턱 7층석탑 머리 위의 개천산(497.2m)은 무소의 뿔처럼 번뜩이는데.
운주사 와불을 알현하고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개천산_가운데 봉우리로 무소의 뿔 같은 느낌을 준다. 야산 중턱에 7층석탑이 보인다.
[박기성의 인문기행 l 전남 화순 - ② 에서 이어집니다.]
박기성 전문기자 l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Copyright © <사람과 산>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사람과 산> 박기성 전문기자] 1972년 3월, 화순 대곡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11점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으면 확인된지 넉 달만에 전격 국보가 되었다. "청동기들의 제작 수준이 높고 종류도 다양하며 수량 또한 많은 데다 종교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청동방울과 거울, 정치적 권위를 드러내는 청동검이 동시에 발견되었기 때문"으로 무덤의 주인이 신분이 높은 지배층이면서 제사장이라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모델 케이스여서 그랬던 듯하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는 BP2560+120년으로 나왔는데 출토 유물의 종류로 판단하면 기원전 3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보여진단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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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성 전문기자 l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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