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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 직후 장면 부통령. 위키피디아
1960년 내각제를 채택한 제2공화국이 열리기 전까지 한국은 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특히 미국처럼 대통령 후보와 함께 선거에 출마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통령을 별도로 뽑았으므로 자유당 이승만 정부에서도 민주당 장면이 4대 부통령으로 취임할 수 조상들의생활의지혜 있었다.
저격 사건은 장면이 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달 만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발생했다. 당시 장면은 암살 시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주변의 경고를 이미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승만이 재선에 성공했지만 조봉암의 선전으로 득표율이 그리 높지 않았던데다 러닝메이트였던 이기붕은 아예 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상황에서 자유당 하나캐피탈금리 세력이 장면을 ‘해코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야당 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유력 정치인들이 모두 일제 치하, 해방 직후 정치적 혼란기를 거치며 여운형 암살과 같은 우익들의 백색 테러를 빈번히 경험한 세대였기 때문에 정적 암살 시도는 당대에도 실체적인 공포였다.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장면 부통령은 연설을 햇살론 부결사유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왔고, 건물을 나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쏜 총탄에 맞았다. 천행으로 총알이 장면의 왼손만을 스쳤지만 장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장면은 단상 위에 다시 올라가 “저는 안전하다”고 알린 뒤 병원으로 갔다.
저격범은 현장에서 민주당원들에게 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당초 경찰은 민주당 신파와 구파 간 갈등에 따른 범행으로 추정했 상가담보대출한도 지만 국회 진상조사단이 저격에 내무부 치안국 인사가 개입된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그 이상 진상규명은 여당인 자유당 방해로 진척이 없었고 사건 내막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밝혀졌다. 당시 치안국장이 사건 배후에 있음이 밝혀졌고, 궁극적인 배후는 이기붕이었음도 드러났다. 민주당이 걱정했던 인기가 떨어진 정권의 주택법제46조 야당 부통령에 대한 테러 시도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1966년 장례 당시 모습. KTV 캡처
결국 1960년 공판에서 연루된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지만 국무총리에 취임했던 장면은 의외로 이들에게 특사를 내려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마저도 배후 인사들은 5.16 군사정변 후 다시 특사를 받아 석방됐고, 저격을 직접 수행한 인물들도 감형으로 15년 정도만 옥살이를 했다.
장면은 자신을 죽이려던 이들에게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권력을 잡은 군부 세력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반쿠데타 분자로 몰려 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 선고를 받았고, 죽기 한 달 전에야 정적 제거를 위해 고안된 ‘정치활동정화법’ 대상에서 제외됐다. 1966년 별세 후 그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장영락 (ped1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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