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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으로 가끔 혜빈이는 나오면서 그 이마에 향해 기자 admin@119sh.info김태희(어머니)가 충청감사 송상기(아들)에게 보낸 한글편지(1700년 3월 11일).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어머니는 천성적으로 글을 좋아하여 대의를 깨치셨다. '천자문'을 입으로 불러 우리들을 가르치셨고, '당음(唐音)' 절구도 당신께서 이해하신 대로 가르쳐 주셨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 곁에서 책을 읽으면 문득 기뻐하시어 근심을 잊은 채 듣기를 지겨워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로운 가르침 또한 그만두지 않으셨으니, 나로 하여금 구차한 생각이나 오만한 태도가 마음에서 바다이야기오락실 싹터 몸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셨다.
내가 충주 목사로 있을 때, 한 대관이 나를 비방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 나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가 관직에 있으면서 어찌 남에게 비방 들을 만한 일을 했겠느냐마는, 세도(世道)의 위태롭고 험함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비록 좋은 음식으로 봉양을 받는다 해도 나는 바다이야기게임다운로드 영화로운지 모르겠다. 콧물을 닦고 가래침을 뱉듯이 관직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니, 어찌 구차하게 목사의 자리에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내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알 수 있다."(송상기 저, '선비행장')
위의 글은 옥오재 송상기(宋相琦, 1657-1723)가 돌아가신 어머니 안동김씨 바다이야기온라인 김태희(金兌喜, 1632-1701)의 삶을 회고하며 쓴 행장이다. 김태희는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손녀로, 제월당 송규렴(宋奎濂, 1630-1709)과 혼인하여 70세의 나이로 운명하기까지 회덕(현 대전시 대덕구 읍내동 후곡)에서 살았다.
위의 글에서 어머니 김태희가 '천자문'과 한시학습 교재인 '당음'을 자녀들에게 직접 가르쳤고, 어린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자녀들의 글 읽는 소리를 경청하며 교육에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특별히 주목되는 점은, 송상기가 충주목사로 있을 때 한 대신으로부터 비방을 듣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김태희는 "벼슬 버리기를 콧물을 닦고, 가래침을 뱉듯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어찌 구차하게 목사의 자리에 있겠느냐?"라고 단호하고도 의연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다이야기오리지널 아들의 관직 생활에 따른 '나아가고 물러남(進退)'의 문제에 있어서, 어머니의 결단과 충고, 지지와 응원이 크게 뒷받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전 대덕구 계족산 자락에 위치한 김효연재 묘소를 찾은 답사객.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충청女지도'에서 거론된 21명의 여성문인=21명의 여성문인이 살았던 시기는 주로 조선시대이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쳐 삶을 영위한 경우에도 전통적 가치 규범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문학작품을 창작한 사례도 포함하였다.
21명의 여성문인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임벽당(1492-1549, 서천), 조애중(1574-1645, 공주·세종), 김태희(金兌喜: 1632-1701, 대전), 이옥재(1643-1690, 홍성), 이온(17-18세기, 홍성), 안정나씨(1647-1737, 대전), 광산김씨(1657-1736, 부여), 김호연재(1681-1722, 대전), 오청취당(1704-1732, 서산), 임윤지당(1721-1793, 청주), 신부용당(1732-1791, 서천), 이사주당(1739-1821, 청주), 청송심씨(1747-1814, 대전), 광주안씨(1752-?, 공주·세종), 강지덕(1772-1832, 제천), 김부용(1800년대, 천안·홍성), 기각(19세기, 논산·청양), 남정일헌(1840-1922, 예산),어순이(1874-1946, 보은), 어능녀(1900년대, 청주), 정주현(1920-2018, 양촌·대전)이다.
이 여성문인들의 출생과 성장, 혼인 후의 거주 지역을 살펴보면, 서천·공주·세종·대전·홍성·부여·서산·청주·제천·천안·논산·청양·예산·보은·양촌 등으로 대전·청주·세종·충청남북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신분은 주로 양반가의 여성이다. 김부용은 기녀 신분이었지만 뒤에 양반의 부실이 되었고, 이온도 부실이다.
작품은 문집으로 묶여있는 경우가 많고, 일부 낱장 문서로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작품의 형식은 한시·한글일기·한글편지·제문·논설문·상소문·잠명(箴銘)·경의(經義)·전(傳)·서발(序跋)·찬(贊)·한글번역시집·자기록 등이다.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마을입구에 세워진 오청취당 시비.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여성문인의 공부에 대한 집념과 고양된 자의식=위의 여성문인들은 공부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집념으로 광범위한 독서량을 보여준다. 여성교훈서류, 4서3경, 불가와 도가, 각종 역사서 류의 서적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흔히 조선시대 여성들의 학문을 '어깨 너머 글' 정도로 과소평가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충청女지도'에서 거론되었던 여성문인들의 공부에 대한 집념은 확고했다. 특별히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여성문인들의 공부 환경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호연재는 '春懷(춘회)'라는 작품에서 "넓고도 넓은 성정을 고이 간직하고, 어찌 방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아픈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죽는 날까지 성현을 배우리라"('만음' 시)고 다짐하였다.
임윤지당은 19세에 혼인하였으나 남편과 자식이 모두 일찍 죽어 양자를 들였다. 그러나 그 양자마저도 요절하는 비운에 처하였다. 그럼에도 성리철학의 일가를 이루었다. 윤지당은 '비검명(匕劒銘)'에서 "힘쓸지어다, 비검이여! 나를 부인이라 여기지 말라. 네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힘써서, 숫돌에 새로 간 것처럼 하라. 내 잡념을 쓸어버리고, 내 마음의 가시덤불을 베어버려라."라고 그 추상같은 칼날의 번득임에 호소하였다. '나를 부인으로 여기지 말고, 벌떼처럼 떼 지어 일어나는 나의 잡념, 내 마음의 가시덤불을 쓸어버리고 베어버리라!'라고 위엄을 표출하며 규중도학(閨中道學)을 열었다.
이사주당은 집안이 어려워 어려서부터 길쌈과 바느질을 하며 성장하였다. 그런데 문득 "사람이 사람 노릇하는 것이, (어찌 길쌈과 바느질) 여기에 있겠는가?(人爲人, 在玆乎?)"라고 반문하며 남다르게 성리학 공부에 전념하였다. 사주당의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성찰이 우리나라 최초의 태교전문 실학서 '태교신기'를 저술하는데 이르렀다. 호서명현들 사이에서 '여중유현(女中儒賢)'이라는 찬탄을 받았다.
기각도 높은 자존감을 가진 여성이었다. "평생을 사나이의 뜻을 지녔으나, 다만 규중의 여성으로 산 것을 탄식한다."('우음' 시), "하늘이 나의 재주를 주었으매 반드시 쓰일 데가 있어서이건마는, 여자 된 것이 한이다."('자탄' 시)라고 탄식하였는데, '기각한필' 수록 249수 작품 속에는 주옥같은 풍속시가 수록되어 있다.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김임벽당 공원에 세워진 김임벽당 시비와 답사객 모습.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문학과 철학으로 완성된 삶의 품격='충청女지도'의 여성문인들은 문학이라는 매개물로 규방이라는 유폐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아를 찾는 철학에 전념하였다. 그러한 삶의 모습과 결과물은 어느새 가족이나 당대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갔고, 여사(女士)·여중군자(女中君子)·여중도학(女中道學)·여중유현(女中儒賢)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특별히 조선의 마지막 여성문인이자 철학자인 남정일헌의 시 '태극(太極)'은, 정일헌의 철학적 사유가 응축된 장쾌한 결과물이다.
"태극은 바로 만물의 근원 되나니, 염옹의 태극도설 지금까지 전해지네. 기는 천지의 형체 없는 밖에서 운행하고, 이는 음양이 나뉘기 전에 갖추어져 있지. 달빛이 온 시내 물 비추니 형상 가히 즐길만하고, 수은은 천 개로 나뉘어도 형체 모두 둥글도다. 우리들 각각의 마음속에 태극이 있나니, 솟구치는 물의 근원 하늘처럼 넓고도 넓구나."(남정일헌 시, '태극')
'충청女지도' 연재를 마치며 아쉬운 점도 있다. '충청女지도'에서 언급되지 못한 여성문인들이 있다. 창녕성씨(15-16세기)·이설봉(李雪峯: 16-17세기)·곽청창(1683-1761)·안동김씨 세 자매(이명세·이식·이항수 부인: 1600년대 후기-, 홍성)·안동김씨(김성달 서녀, 홍성)·기계유씨(김호근 부인: 1818-1875, 홍성)·광산김씨(송국로 부인, 1842-1917, 대전) 등인데, 한시·한글일기·여행기 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녹록지 않은 시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핏빛 먹물 찍어 삶의 여정을 기록해 나갔던 역사 속 충청여성문인들. 앞서 살다 간 그 여성들의 정신사를 돌이켜 생각하며, 오늘 여기 우리의 삶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대전 대덕구 동춘당에서 개최된 '김호연재문화축제' 공연의 한 장면.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어머니는 천성적으로 글을 좋아하여 대의를 깨치셨다. '천자문'을 입으로 불러 우리들을 가르치셨고, '당음(唐音)' 절구도 당신께서 이해하신 대로 가르쳐 주셨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 곁에서 책을 읽으면 문득 기뻐하시어 근심을 잊은 채 듣기를 지겨워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로운 가르침 또한 그만두지 않으셨으니, 나로 하여금 구차한 생각이나 오만한 태도가 마음에서 바다이야기오락실 싹터 몸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셨다.
내가 충주 목사로 있을 때, 한 대관이 나를 비방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 나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가 관직에 있으면서 어찌 남에게 비방 들을 만한 일을 했겠느냐마는, 세도(世道)의 위태롭고 험함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비록 좋은 음식으로 봉양을 받는다 해도 나는 바다이야기게임다운로드 영화로운지 모르겠다. 콧물을 닦고 가래침을 뱉듯이 관직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니, 어찌 구차하게 목사의 자리에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내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알 수 있다."(송상기 저, '선비행장')
위의 글은 옥오재 송상기(宋相琦, 1657-1723)가 돌아가신 어머니 안동김씨 바다이야기온라인 김태희(金兌喜, 1632-1701)의 삶을 회고하며 쓴 행장이다. 김태희는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손녀로, 제월당 송규렴(宋奎濂, 1630-1709)과 혼인하여 70세의 나이로 운명하기까지 회덕(현 대전시 대덕구 읍내동 후곡)에서 살았다.
위의 글에서 어머니 김태희가 '천자문'과 한시학습 교재인 '당음'을 자녀들에게 직접 가르쳤고, 어린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자녀들의 글 읽는 소리를 경청하며 교육에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특별히 주목되는 점은, 송상기가 충주목사로 있을 때 한 대신으로부터 비방을 듣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김태희는 "벼슬 버리기를 콧물을 닦고, 가래침을 뱉듯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어찌 구차하게 목사의 자리에 있겠느냐?"라고 단호하고도 의연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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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덕구 계족산 자락에 위치한 김효연재 묘소를 찾은 답사객.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충청女지도'에서 거론된 21명의 여성문인=21명의 여성문인이 살았던 시기는 주로 조선시대이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쳐 삶을 영위한 경우에도 전통적 가치 규범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문학작품을 창작한 사례도 포함하였다.
21명의 여성문인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임벽당(1492-1549, 서천), 조애중(1574-1645, 공주·세종), 김태희(金兌喜: 1632-1701, 대전), 이옥재(1643-1690, 홍성), 이온(17-18세기, 홍성), 안정나씨(1647-1737, 대전), 광산김씨(1657-1736, 부여), 김호연재(1681-1722, 대전), 오청취당(1704-1732, 서산), 임윤지당(1721-1793, 청주), 신부용당(1732-1791, 서천), 이사주당(1739-1821, 청주), 청송심씨(1747-1814, 대전), 광주안씨(1752-?, 공주·세종), 강지덕(1772-1832, 제천), 김부용(1800년대, 천안·홍성), 기각(19세기, 논산·청양), 남정일헌(1840-1922, 예산),어순이(1874-1946, 보은), 어능녀(1900년대, 청주), 정주현(1920-2018, 양촌·대전)이다.
이 여성문인들의 출생과 성장, 혼인 후의 거주 지역을 살펴보면, 서천·공주·세종·대전·홍성·부여·서산·청주·제천·천안·논산·청양·예산·보은·양촌 등으로 대전·청주·세종·충청남북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신분은 주로 양반가의 여성이다. 김부용은 기녀 신분이었지만 뒤에 양반의 부실이 되었고, 이온도 부실이다.
작품은 문집으로 묶여있는 경우가 많고, 일부 낱장 문서로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작품의 형식은 한시·한글일기·한글편지·제문·논설문·상소문·잠명(箴銘)·경의(經義)·전(傳)·서발(序跋)·찬(贊)·한글번역시집·자기록 등이다.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마을입구에 세워진 오청취당 시비.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여성문인의 공부에 대한 집념과 고양된 자의식=위의 여성문인들은 공부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집념으로 광범위한 독서량을 보여준다. 여성교훈서류, 4서3경, 불가와 도가, 각종 역사서 류의 서적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흔히 조선시대 여성들의 학문을 '어깨 너머 글' 정도로 과소평가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충청女지도'에서 거론되었던 여성문인들의 공부에 대한 집념은 확고했다. 특별히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여성문인들의 공부 환경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호연재는 '春懷(춘회)'라는 작품에서 "넓고도 넓은 성정을 고이 간직하고, 어찌 방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아픈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죽는 날까지 성현을 배우리라"('만음' 시)고 다짐하였다.
임윤지당은 19세에 혼인하였으나 남편과 자식이 모두 일찍 죽어 양자를 들였다. 그러나 그 양자마저도 요절하는 비운에 처하였다. 그럼에도 성리철학의 일가를 이루었다. 윤지당은 '비검명(匕劒銘)'에서 "힘쓸지어다, 비검이여! 나를 부인이라 여기지 말라. 네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힘써서, 숫돌에 새로 간 것처럼 하라. 내 잡념을 쓸어버리고, 내 마음의 가시덤불을 베어버려라."라고 그 추상같은 칼날의 번득임에 호소하였다. '나를 부인으로 여기지 말고, 벌떼처럼 떼 지어 일어나는 나의 잡념, 내 마음의 가시덤불을 쓸어버리고 베어버리라!'라고 위엄을 표출하며 규중도학(閨中道學)을 열었다.
이사주당은 집안이 어려워 어려서부터 길쌈과 바느질을 하며 성장하였다. 그런데 문득 "사람이 사람 노릇하는 것이, (어찌 길쌈과 바느질) 여기에 있겠는가?(人爲人, 在玆乎?)"라고 반문하며 남다르게 성리학 공부에 전념하였다. 사주당의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성찰이 우리나라 최초의 태교전문 실학서 '태교신기'를 저술하는데 이르렀다. 호서명현들 사이에서 '여중유현(女中儒賢)'이라는 찬탄을 받았다.
기각도 높은 자존감을 가진 여성이었다. "평생을 사나이의 뜻을 지녔으나, 다만 규중의 여성으로 산 것을 탄식한다."('우음' 시), "하늘이 나의 재주를 주었으매 반드시 쓰일 데가 있어서이건마는, 여자 된 것이 한이다."('자탄' 시)라고 탄식하였는데, '기각한필' 수록 249수 작품 속에는 주옥같은 풍속시가 수록되어 있다.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김임벽당 공원에 세워진 김임벽당 시비와 답사객 모습.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문학과 철학으로 완성된 삶의 품격='충청女지도'의 여성문인들은 문학이라는 매개물로 규방이라는 유폐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아를 찾는 철학에 전념하였다. 그러한 삶의 모습과 결과물은 어느새 가족이나 당대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갔고, 여사(女士)·여중군자(女中君子)·여중도학(女中道學)·여중유현(女中儒賢)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특별히 조선의 마지막 여성문인이자 철학자인 남정일헌의 시 '태극(太極)'은, 정일헌의 철학적 사유가 응축된 장쾌한 결과물이다.
"태극은 바로 만물의 근원 되나니, 염옹의 태극도설 지금까지 전해지네. 기는 천지의 형체 없는 밖에서 운행하고, 이는 음양이 나뉘기 전에 갖추어져 있지. 달빛이 온 시내 물 비추니 형상 가히 즐길만하고, 수은은 천 개로 나뉘어도 형체 모두 둥글도다. 우리들 각각의 마음속에 태극이 있나니, 솟구치는 물의 근원 하늘처럼 넓고도 넓구나."(남정일헌 시, '태극')
'충청女지도' 연재를 마치며 아쉬운 점도 있다. '충청女지도'에서 언급되지 못한 여성문인들이 있다. 창녕성씨(15-16세기)·이설봉(李雪峯: 16-17세기)·곽청창(1683-1761)·안동김씨 세 자매(이명세·이식·이항수 부인: 1600년대 후기-, 홍성)·안동김씨(김성달 서녀, 홍성)·기계유씨(김호근 부인: 1818-1875, 홍성)·광산김씨(송국로 부인, 1842-1917, 대전) 등인데, 한시·한글일기·여행기 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녹록지 않은 시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핏빛 먹물 찍어 삶의 여정을 기록해 나갔던 역사 속 충청여성문인들. 앞서 살다 간 그 여성들의 정신사를 돌이켜 생각하며, 오늘 여기 우리의 삶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대전 대덕구 동춘당에서 개최된 '김호연재문화축제' 공연의 한 장면.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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