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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없었다. 돌다가 보면 모습이 한심하게 보스한테웅장한 극장 내부는 황금빛과 푸른빛이 조화를 이루며 화려함의 극치를 뽐냈다. 5층 1700여 석 규모의 대극장에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메운 관객의 열기가 스포츠 경기장만큼이나 뜨거웠다. 지난달 17일과 19일 찾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본관의 풍경이다.



5층 1700여석 규모의 마린스키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이해원


제정 러시아 시절의 수도에 세운 이 극장에는 ‘황제석’이 있다. 황제석은 무대 정면을 향해 있는데 현대적인 극장에 빗대자면 2층 가장 맨 앞자리다. 황제석에 앉는 이들의 시야를 위해 무대는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사면을 이룬다. 평면 진행할 의 무대에서는 무용수들이 일렬로 섰을 때 모두의 발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이런 무대가 탄생했다. 러시아에서 황제가 사라진 지 한 세기를 훌쩍 넘었는데도, 어쩌면 무용수에겐 가장 긴장될 만한 무대 환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마린스키발레단 무용수들은 경사진 바닥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뛰어오르며 고난도의 동작을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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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극장 내 기념품 가게. 화려한 극장 외관과 달리 디스플레이가 정갈하진 않은 느낌이다. ⓒ이해원


공연이 끝나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라진다. 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큰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무대 위에서는 지원제한대학 수차례의 커튼콜과 꽃다발 증정식이 이뤄진다. 무용수의 상반신만 한 거대한 꽃다발들이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다. 관객들이 공연 시작 전에 극장 직원에게 맡겨둔 꽃다발들이다. 꽃다발도 대륙의 기상을 닮아서인지 스케일이 크다. 꽃다발들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은 착시마저 불러일으킨다. 발레 공연이 매일같이 열리는 마린스키 극장 앞 꽃집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미연 꽃다발을 들고 행복에 젖어있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전쟁의 현실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발레리나 마리야 일류시키나의 공연 후 퇴근길. ⓒ이해원


마린스키 극장은 막과 막 사이의 인터미션이 길다. 막을 내릴 때마다 저축은행파산신청 25분가량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관객들은 여유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극장 내부 카페에서 캐비어나 연어를 올린 바게트, 샴페인, 레몬 케이크 등을 판매하는데 관객들은 간단히 배를 채우며 공연 명장면에 관해 열띤 토론을 펼친다. 춤 동작에 대한 평가, 연출에 대한 감상, 새로운 무용수에 대한 인상 등 그들의 대화는 깊고도 생생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은 이들이 고전 속 ‘문화 살롱’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안겼다.마린스키 극장은 화려한 에메랄드빛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상대적으로 낡았다. 고풍스러운 역사와 전통이 자랑이라지만 이는 사용자의 경험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오직 무대 위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관객들의 면면을 보며 아쉬운 인프라로 인한 불편함을 압도하는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