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마을에 전소된 주택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영덕읍 곳곳에서 불탄 주택을 다수 볼 수 있다.


‘춘래불사춘.’
이미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경북 일대 사상 최대 피해를 남긴 대형 산불이 진화됐지만 그 여파는 쉬 가시지 않은 탓이다. 산림 4만8000㏊를 태우고, 28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마는 예외 없이 축산농가의 삶도 송두리째 앗아갔다. 
화재 열기에 축사 뼈대는 약해질 대로 약해졌고, 겨우 목숨을 건진 소도 죽을 날 만을 기다리는 상황.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복구작업은 더디니 농가는 망연자실 하늘만 쳐다본다. 본지는 이달 3일 축산농가, 특히 한우 쪽 피해가 컸다는 영덕·안주식시간
동 지역을 돌며 ‘살아남은 자들이 마주한 고통의 현장'을 살펴봤다.  
◆전쟁터를 방불케 할 영덕과 안동의 산등선=3일 기차로 서울·안동으로 오가는 취재 여정은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가 동행하는 듯했다. 각종 매체로만 접했던 대형 산불 현장의 참담함을 직접 목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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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첫 기착지인 영덕군 영덕읍으로 향하는 국도. 산세가 높아질수록 나무 타는 냄새가 진해졌다. 산의 등줄기 곳곳에는 타다 만 소나무들이 목발을 짚고 있는 듯 위태로워 보였다. 
3월25일 오후부터 경북 안동과 영덕 인근에는 걸어가는 사람이 휘청일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단다. 청송에서 출발한 산불은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안야마토게임동영상
동을 넘어 영덕 중앙부를 강타했다. 
3월28일 주불이 진화됐지만 산불이 난 곳곳은 여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검게 그을린 나목, 쓰러지기 직전인 주택, 형태를 알 수 없는 차량에선 여전히 화마가 남긴 생채기가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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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산과 동떨어진 평지임에도 산불이 옮겨 붙었다. 지금은 출입 금지 테이프만 붙어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축산농가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기적”=“불이 삽시간에 번지니 어떡해요. 모든 걸 버리고 도망나왔어요. 산불이 덮친 도로를 뚫고 무조건 바다쪽으로 향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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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 소를 키우는 이구식(70)·김순옥(68) 부부는 자신이 경험한 산불 화재를 회상하자 몸서리쳤다. 3월25일 저녁 6시 강풍경보 재난 문자를 보자마자 어스름 내린 하늘을 쳐다보니 바람을 탄 도깨비 불이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갔다. 전기와 통신까지 두절됐으니 누구의 도움도 받을 길이 없었다. 이구식씨는 아내와 가까이에 있는 차를 끌고 ‘바닷가로 가면 살 수 있겠다’는 생각만 하며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의 도로를 내달렸다. 
김순옥씨는 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그 당시 기억을 되살렸다.
“동거동락하던 소를 한마리도 꺼내지 못하고 우리만 빠져나오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몰라요. 사실 조금만 늦었다면 우리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겠죠. 매일 인사 나누던 동네 어르신 5명도 이번 화재로 돌아가셨어요…” 
급박한 상황은 안동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남선면 구미리에서 아들 권순형씨(54)와 같이 한우를 키운다는 권정호씨(84)도 난생 처음 보는 대형 산불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오후부터 엄청난 바람이 분 거예요. 잘하면 사람도 날아가겠더라니깐요. 산불이 차례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커다란 불똥이 서에 번쩍 동에 번쩍해요. 내 평생 이런 지옥 같은 경험은 처음이란 말이죠.”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 한우를 키우는 이구식씨(70)가 대형 산불로 인해 대부분이 불에 탄 축사 안을 응시하고 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 한우를 키우는 이구식씨(70)의 축사 내부. 살아남은 소의 눈과 코에 입은 화상이 뚜렷하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소…“살아도 산 것 아냐”=산불이 진화됐다고 해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에 마침표가 찍힌 것은 아니다. 
이씨네 농장에서 자라던 소 75마리 가운데 산불로 21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축사 지붕은 치아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빈틈이 보였고, 허리가 휜 철제 기둥이 금방 부러질 것 같았다. 완전히 전소된 소 먹이용 짚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살아있는 소도 숨쉬기가 곤란한지 침을 힐리며 연신 ‘흐으으 흐으으’ 앓는 소리를 냈다.  
이씨의 복구작업을 도우러 왔다는 박준호 영덕울진축산농협 축산종합지원센터장은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살아있는 소 상태를 보세요. 뜨거운 열기를 오랫동안 마신 터라 폐가 많이 상했을 겁니다. 앞으로 소들이 더 많이 죽을 수 있고, 소에게 사료를 먹여도 비육이 쉽지 않아요. 농가 입장에서는 화재가 끝난 이후에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속이 탈 노릇이죠.”
실제 취재 당일 소가 죽는 일도 있었다. 권정호씨는 “오늘 아침에 폐를 다친 소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전날까지 죽은 8마리를 포함해 모두 9마리가 폐사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피해농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산정 기준에 따르면 ‘한우 육성우’가 폐사하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액은 91만3500원 수준. 
이구식씨는 “보통 출하 전 한우값이 600~1000만원가량 하는데 100만원도 안 되는 지원금으로 어찌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겠느냐"면서 “재난 후 축산업을 이어갈 용기가 도무지 생기질 않는다”고 했다. 



경북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있는 권정호씨(84)네 한우 축사 앞. 주차돼 있던 차량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타버렸다.





경북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있는 권정호씨네 한우 축사 내부. 높게 쌓여 있던 볏짚이 전부 타 재만 남았다.


◆사료 옮길 농기계도 불타… 온정 손길 절실=산불이 번지는 속도는 빨랐지만 복구 속도는 더디다. 워낙 피해가 큰 데다 복구작업에 나설 인프라마저 망가진 탓이다. 당장 소똥을 치울 농기계마저 불타 사라졌다.
안동봉화축협의 박윤영 계장은 “소똥을 치우거나, 볏짚을 옮길 다목적 농기계, 가령 트랙터·스키로더가 전소된 농가가 많아 복구작업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금전적 도움뿐만 아니라 인력이나 농기계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어서 “피해지역을 한데 묶어 대대적인 한우 할인판매 행사 같은 것을 연다면 축산농가와 지역경제가 다시 살아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축사 개보수에도 일손이 태부족하다. 박준호 센터장은 “일단 피해 농가수가 엄청 많을뿐더러, 축사 내 철제 골조가 약해져 작업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전문업체에서 일을 맡길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대형 산불에 따른 지역 축산업계 피해는 전방위적이다. 대한한돈협회에 따르면 10개 양돈농가에서 3만마리 이상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양봉의 피해도 극심하다. 한국양봉협회 관계자는 “우리 협회 회원만 기준으로 했을 때 100여 농가 양봉장이 전소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실종된 꿀벌까지 고려한다면 무형의 피해도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 와중에 온정의 손길 이어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소·돼지·양계·양봉 등을 포함해 10개 지역축협 386개 농가에서 피해가 났다. 
농협경제지주 축산사료자재부 관계자는 “화재 피해를 본 축산농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가축의 먹이일 것”이라면서 “7일 기준 볏짚 164ｔ, 조사료 46ｔ, 영양제 8ｔ을 지역축협의 피해 정도에 따라 차등 지원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