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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차 국회의원 보좌관 임현은 “법을 만들면서 그 법을 가장 안 지키는 곳이 국회”라고 했다. 강선우 의원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장애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법을 만든다지만 정작 자신은 그 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쓴 ‘나는 보좌관이다’는 국회 보좌관들의 치열한 삶을 기록한 책. ‘관노비’ ‘일용직 공무원’이란 자조처럼 수모 당하는 사례가 여럿 등장하지만, 변기 고치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리게 한 의원은 없었다. ‘보좌진 취업 방해 의 청약자격 혹’은 인사 청문회장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소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시정잡배도 그런 짓은 안 한다.”
강 후보를 ‘따뜻한 엄마’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며 엄호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가장 절망했다고 했다. “그분들이 지켜줘야 할 사람은 자신과 동고동락해 온 보좌진 아닌가. 동지이자 한 식구나 다름없는 보좌진 2700명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농협캐피탈 .”
◇사과없이 변명과 궤변만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의 청문회를 어떻게 봤나?
“분노했다. 진심을 담아 간곡히 사과하면 될 것을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하더라. 싸늘한 표정으로 기계처럼 답변하는 모습에 무서움마저 느꼈다.”
-강 후보는 5년간 46명의 보좌진이 면직됐다는 건 왜곡이고 디딤돌대출 방법 , 실제는 28명이라고 했다. 초선 의원실은 보좌관 입출이 잦다는 견해도 있다.
“28명은 적은 숫자인가? 초선 의원실이라고 해서 보좌진이 자주 바뀐다는 근거는 또 어디 있나? 그분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는 했다.
“그건 사과가 아니다. 변기는 기준금리동향 ‘조언을 구한 것’이라거나 음식물 쓰레기는 ‘다음 날 먹으려고 차에 가져갔다가 놓고 내렸다’는 식의 해명도 구차했다. ‘사적 업무를 반복적으로 지시한 건 아니지 않으냐’는 아군(민주당)의 옹호성 질문에 ‘반복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내놓을 수 없으니 ‘사적인 업무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식의 궤변엔 정말 화가 났다.”
채권원리금상환 -강 후보는 전직 보좌관의 악의적 허위 제보라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떳떳하면 청문회에 해당 보좌관을 증인으로 불렀어야 한다. 민주당이 반대해 증인 채택이 무산된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나는 보좌관이다’에도 의원들 갑질 사례가 나온다.
“터질 게 터졌다고 보는 게 맞지만, 취업 방해 의혹은 충격적이다. 한 사람, 한 가장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목격자 증언도 나오던데, 강 의원 본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경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에서도 비판 성명을 냈다.
“자기 당 보좌진이 갑질을 당했으니 민보협이 국보협(국민의힘보좌진협의회)보다 먼저 비판하고 나섰어야 한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강 후보를 비판하는 보좌진을 ‘미래의 수박’이라며 색출하라고 한다.
“대의를 위해 의원님들 큰 행보에 걸림돌 되지 말라는 소리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라는 것이니 얼마나 잔인한가.”
-진보 여성단체도 사퇴를 촉구하는 등 여론이 들끓는데도 이재명 대통령은 임명 강행 수순에 들어갔다.
“약자를 보호하고 서민의 편에 서겠다는 이재명 정권이 이를 부정한 선례가 될 것이다. 약자 위에 군림해 갑질을 일삼아온 여성가족부 장관을 청년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7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 청문회에 출석해 굳은 표정으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뉴스1


◇밥도 짓고, 애완견 산책도?
-법률에 정해진 보좌진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한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좌 직원을 둘 수 있다’고 적혀 있던데.
“미국 의원실은 언론 및 홍보(동영상) 담당, 정책 및 입법 담당, 민원 담당 등 보좌관 업무가 명확히 구분돼 있다. 우리는 수행 담당, 행정 담당만 정해져 있다. 수행비서 업무에 공백이 생기면 대체 인력 없이 다른 보좌진들이 메꾸는 식이다.”
-그래도 공적 업무와 사적 업무는 구분할 수 있지 않나?
“보좌진의 ‘고용주’는 국회의원이다. 채용도 해고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나는 보좌관이다’란 책을 쓸 때만 해도 면직 신청서에 의원이 등록 인장만 찍으면 그 자리에서 해고됐다. 법이 개정돼 30일간의 유예 기간을 뒀지만 국회의원 권한이 줄어든 건 아니다. 강력한 갑을 구조 속에서 사적 업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책에도 자녀의 학원 픽업, 대학원 논문 대필, 애완견 산책, 경조사 수발 등 여러 케이스가 나온다.
“보좌진들의 증언을 기록했다. 의원님들이 바쁘니 경우에 따라 사적 업무를 도와드릴 순 있다고 본다. 문제는 태도다. 강 후보가 ‘미안한데, 음식물 쓰레기 좀 버려주세요’라고만 했어도 이렇듯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에 보니 의원실에서 밥을 짓게 한 의원도 있더라.
“화가 나면 커피잔을 보좌관에게 던지는 분으로도 유명했다. 추석에 택배가 잔뜩 배달되면 국감 준비로 연휴에도 일하는 보좌진에게 골고루 나눠 주는 의원님이 있는가 하면, 선물 상자 전부 자기 집으로 나르게 하는 분도 있었다. 어떤 의원실은 의원 사모님이 보좌관 면접을 봤다. 사주팔자까지 따져가면서(웃음).”
-국회 사무처에 인권센터가 있다던데.
“인권센터에 신고하려면 자기 생계를 걸어야 한다. 자신이 모시던 의원을 신고하는 보좌진을 다른 의원들이 좋아하겠나.”
-모든 의원이 그러진 않을 텐데.
“물론이다. 언론인 출신인 한 의원님은 내가 자동차 문을 열어드리자 불같이 화를 내셨다. 차 문이나 열어주려고 보좌관 하고 있느냐며(웃음). 현재 의정활동을 도와드리고 있는 김승수 의원님은 행정전문가로 정책 발굴이나 분석에 관한 노하우를 많이 가르쳐주신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보좌관들이 7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인사청문회장 앞에서 강 후보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스1


◇여의도엔 가을이 없다
-국회 보좌진의 고용은 어느 정도로 불안정한가?
“해고뿐 아니라 의원이 낙선하거나 중도 사퇴하면 그날로 짐을 싸야 한다. 만일에 대비해 대형 버스 운전면허도 따놨다. 마을버스라도 운전하며 생업을 이어가려고(웃음).”
-불안정한 직업이라는 걸 알고 지원한 거 아닌가? 당신은 책에 ‘보좌관에게는 잡놈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썼다.
“잡놈 근성이란, 어떤 업무든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 봐야 한다는 뜻이지, 잡놈 취급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입법과 정책 발굴이 주 업무이지만 의원실에 손님이 오면 커피도 탈 수 있고, 기자들 상대로 대변인 역할도 할 수 있고, 부처 공무원과 정책 토론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영역을 넓혀가라는 뜻이다.”
-국회의원만큼이나 보좌진도 공무원들이나 기업에 갑질을 한다던데.
“정치의 한복판에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의원 연령이 낮아지고 보좌진도 젊어지면서 나이 든 공무원들과의 마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보좌진 9명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은 하원 18명, 상원 34명까지 둘 수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보좌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개인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보좌관으로 고용하거나, 사적 업무에 보좌진을 투입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전문성을 갖고 입법 활동을 보좌하게 해줘야 한다. 우리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웃음).”
-‘여의도에는 가을이 없다’는 말도 있더라.
“의원을 지낸 김홍신 작가의 표현이다. 국회의 가을은 9월 1일 정기국회로 시작해 예산안 심의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100일간의 전쟁이다. 한번은 12월 마지막 날까지 예산안 처리가 안 된 경우가 있었다. 밤샘한 뒤 아침을 먹으러 광흥창으로 가는데 서강대교 한 차선에 자동차가 가득 주차돼 있더라. 해돋이를 보려는 인파였다. 그제야 새해가 밝았다는 걸 알았다(웃음).”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임현 보좌관. 그는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회 보좌진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오늘 또 뻗치기?
-수협 어판장, 은행, 방송사를 거쳐 서른 살에 국회 인턴으로 들어와 수석보좌관까지 지냈더라.
“학벌, 스펙은 없지만 성실함 하나로 돌파해 왔다.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다. 바닥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배운 덕에 선거 기획부터 국감, 회계, 살림살이까지 모든 업무를 총괄할 수 있다. 이런 보좌관 흔치 않다(웃음).”
-열린우리당에서 국민의힘까지 진보와 보수 정당을 오갔다.
“과거와 달리 요즘 보좌진은 이념과 정치 성향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철저히 생계형이라 중립과 전문성이 무기다. 보좌관을 상대로 이념 검증을 하는 정당은 사라져야 한다.”
-‘여의도 21년’이면 별별 일을 다 겪었겠다.
“광우병 파동부터 패스트트랙, 두 번의 대통령 탄핵까지 파란만장했다. 해머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의원님들 방패막이로 피 터지게 몸싸움도 했고, 현란한 선동 정치의 민낯도 봤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회의장 밖에서 ‘오늘 또 뻗치기야?’ 하며 허탈해하는 밤의 연속이었다.”
-계엄도 있었다.
“계엄은 잘못된 것이지만 ‘입법 독재’의 참담한 비극이기도 했다.”
-보좌관으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많은 순간이 있지만, 20대 국회 때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을 때 뿌듯했다.”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 보좌관이다. 자중지란에 빠진 국힘에 탈출구가 있을까?
“민주당은 ‘생계형 정치’, 국민의힘은 ‘부업형 정치’를 한다는 말이 있다. ‘동지애’를 내세우며 똘똘 뭉치는 민주당에 ‘너는 틀리고 내가 옳다’며 분열하는 모습으로는 백전백패다. 이제라도 당내 화합과 혁신을 위해 한 걸음씩 양보하고 손을 잡았으면 좋겠다.”
-보좌관 출신 정치인들이 많다. 궁극의 목표는 국회의원인가?
“그런 꿈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욕심은 없다. 나 하나 들어간다고 정치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웃음). ‘그림자’ ‘얼굴 없는 조연’의 치열한 삶도 고귀한 경험이었다. 어느 자리에 있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묵묵히 기여하고 싶다.”
☞임현
1975년 부산 출생.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고려대 대학원 감사행정학과를 수료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실 인턴 비서로 시작해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실 보좌관까지 진보와 보수 정당을 두루 거쳤다. 지금은 김승수 의원을 도와 AI 기술 등을 이용한 정부 및 공기업 사칭 불법 온라인 카지노 대응과 청소년 불법도박 근절, 불법 OTT·웹툰 사이트 퇴출 이슈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보좌관이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