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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유난히 고단했던 날, 퇴근길 순대 트럭에서 먹는 따뜻한 순대 한접시에 마음이 풀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심야식당2’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인생사를 소박한 음식에 담아 보여준다. 원작은 작가 아베 야로의 만화로, 영화는 물론 드라마와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제작될 만큼 사랑을 받아왔다.
“하루가 저물고 모두가 귀가할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사람들은 가게를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있냐고? 그게, 꽤 많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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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메밀국수 ‘소바’. 영화 ‘심야식당 2’ 스틸컷


도시의 높은 빌딩 사이 좁은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 차림표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소주·사케·맥주뿐이지만, 손님이 요청하면 웬만한 건 다 만들어주는 게 이곳의 영업 방침이다. 손님들은 ‘ㄷ’자 주식투자설명회
모양의 바 테이블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에 자신의 속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다. 영화엔 봄·여름·가을 계절마다 각각 다른 손님과 음식이 등장하는데, 여름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래된 메밀국숫집을 운영하는 세이코와 그의 아들 세이타, 그리고 시원한 ‘메밀국수(소바)’다.
세이코는 가게를 마감하고 심야식당에서 맥주 한잔에 답답한삼성전자 주식
마음을 털어낸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아들 세이타를 홀로 키워온 그는 아들이 국숫집을 잇길 바라지만, 아들은 가업에 관심을 갖기는커녕 메밀국수보다 심야식당의 볶음우동을 더 즐겨 찾는 철부지다. 그러던 어느 날, 세이타는 자신보다 15살 많은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고백한다. 충격에 빠진 세이코에게 마스터(가게 주인)는 메밀국수 한그릇을 내민다. 알고 보니 아보광티에스 주식
들이 직접 만든 국수. 국수가 맛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울음을 참으며 꼭꼭 씹는 세이코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메밀국수에 담긴 아들의 진심을 느낀 세이코가 아들의 선택과 성장을 마침내 받아들이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여름을 배경으로 메밀국수를 후루룩 먹는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식 메밀국수는 ‘소바’라 한다.릴게임천국
가다랑어로 맛을 낸 일본식 간장(쓰유) 국물에 간 무, 얇게 썬 파, 고추냉이를 풀고, 따로 나온 메밀면을 조금씩 덜어 이 국물에 살짝 담가 먹는 여름 별미다. 소바는 단어 자체로 ‘메밀’이란 뜻인데 ‘메밀국수’를 뜻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에도 지역 곳곳에 메밀로 만드는 음식이 여럿 있지만 독특한 모양과 이름으로 눈길이 가는 건 경남 의령의 ‘의령소바’다.



1) 메밀반죽을 제면기로 가늘게 뽑는다.





2) 메밀면을 2분 정도 삶은 뒤 찬물로 전분을 씻어낸다.





3) 얼음물에 헹궈 쫄깃해진 메밀면을 놋그릇에 담는다.





4) 고명과 매운 양념장을 메밀면에 올린 뒤 차가운 육수를 붓는다.





5) 의령소바는 취향에 따라 냉·온·비빔으로 즐길 수 있다.


‘의령 메밀국수’가 아닌 ‘의령소바’로 불리는 건 이 음식이 만들어진 시기와 연관이 있다. 광복 전후 이 지역에선 일본식 메밀국수를 한국인 입맛에 맞게 재해석해 시장을 중심으로 팔기 시작했고, 차차 이곳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으로 시집갔던 김씨 할머니가 돌아와 식당을 차렸다는 설, 의령에 일본인 광산업자들이 몰려들면서 냉면집에서 소바를 팔기 시작했다는 설 등이 음식의 기원으로 전해진다. 의령소바는 디포리(밴댕이) 같은 해물을 우린 국물에 쇠고기를 조린 간장으로 간을 한 육수, 그리고 장조림 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는 게 특징이다. 지금도 의령전통시장 주변엔 독특한 메밀국수맛을 느낄 수 있는 의령소바 맛집이 성업 중이다.
시장 입구에 있는 ‘화정소바’는 1978년부터 장터에서 의령소바와 국수를 팔아 2대째 이어오고 있다. 주방에선 은은한 간장과 멸치 육수 냄새가 퍼지고, 제면기에선 하루 전 저온 숙성한 메밀 반죽이 가늘게 뽑혀 나온다. 사장 김동환씨(41)는 “식감을 위해 온소바·비빔소바·냉소바마다 면 두께를 달리한다”고 설명했다. 메밀면을 삶을 땐 면이 눌어붙지 않게 대나무 막대기로 휘휘 저어가며 익힌다. 2분이 조금 안되게 삶은 후 너무 차갑지 않은 미온수로 면에 붙은 전분을 씻어내고, 마지막으로 얼음물에 면을 담갔다가 건지면 탱글탱글한 메밀면이 준비된다. 고명은 메추리알·오이·배, 그리고 양념장과 잘게 찢은 장조림을 얹는다. 마무리로 살얼음 낀 육수를 부으면 완성. 김 사장은 의령소바의 정체성을 잘 지켜가면서도 이곳만의 특별한 맛을 내고 있다.



경남 의령 ‘의령소바’. 독특한 한국식 메밀국수맛을 느낄 수 있다. 살얼음이 떠 있는 시원한 육수와 짭짤한 장조림 고명, 구수한 메밀면 조합이 좋다. 의령=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메밀은 대부분 부모님이 농사지은 메밀밭에서 가져와요. 메밀을 한번 더 볶아서 구수한 맛을 살리고, 육수는 멸치를 우려내 깔끔한 맛을 내죠. 소바라고 하니 일본식 쓰유맛을 생각하고 오는 손님도 있는데, 시원한 멸치육수가 오히려 더 입맛에 맞는다고들 하세요.”
놋그릇에 소담히 담긴 의령소바. 면 위에 올려진 고명과 빨간 양념장을 섞기 전 국물을 먼저 맛본다. 멸치육수에 장조림 간장이 들어간 국물은 잔치국수와는 확연히 다르다. 멸치의 비린 향은 전혀 없고 육향이 감도는 깊은 감칠맛이 난다. 얇은 메밀면은 차가운 국물에도 딱딱하게 굳지 않고 부들부들 잘 넘어간다. 달콤한 배와 아삭아삭한 오이, 짭짤한 장조림이 메밀면과 조화롭다.
하루가 저물고 귀가할 무렵, 오늘 하루를 어떤 음식으로 마무리할까. 꿉꿉한 날씨를 잊게 해줄 얼음 동동 의령소바도 괜찮겠다.